"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의 책은 일단 그 색감만으로도 눈을 끈다. 와일드스미스만의 특장, 화려한 색채의 향연을 바탕으로, 한 촌 암소의 출세기가 펼쳐진다.
예전에, 먹을 것 입을 것 궁했을 때에 아이들의 장래 희망은 대개가 의사 아니면 판?검사였다. 요즘 아이들은 한때 그런 꿈을 가졌던 어른들이 세대 차이 느끼게도 운동 선수나 연예인이 되고 싶어서 안달복달한다. 하지만 스타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한 법. 실력은 기본이고 몇 년씩 갖은 애를 쓰고 노력해도 운이 따라 주지 않으면 그저 희망으로 그칠 뿐이다. 그런 반면에 대단히 불공평하게도 우연히, 억세게도 운이 좋아서 순탄하게 스타의 길을 걷는 경우도 적잖은데, 이번엔 그 행운의 표적이 약간 엉뚱했다.
촌 암소가 엉겁결에 “방송을 탔다가” 스타가 된다는 설정도 재미있지만 곳곳에 기발한 장면들이 숨어 있어 반쪽짜리 페이지가 들어 있는 플랩북의 묘미를 맘껏 느끼게 해 준다. 텔레비전 광고에 나온 빨갛고 근사한 새 트랙터를 보고 입을 헤 벌리고 감탄하는 아저씨가 나오는 페이지를 넘기면 그 아저씨가 똑같은 몸짓, 똑같이 입을 헤 벌린 표정으로 도회지의 모습이 나오는 텔레비전을 바라보고 있고, 창밖에서는 암소가 그림책 보는 사람들에게는 심히 실례되게도 엉덩이를 보이며 역시 넋을 빼고 있다. 바로 전 페이지에서 롱 샷으로 보이던 소가 반 토막 페이지만 살짝 들추면 클로즈 샷으로 나타난다. 암소가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기가 찰 노릇인데, 이 암소가 출연하는 영화의 내용을 알고 보면 말문이 막히고 만다. 서부 영화라니. 암소를 타고 거친 서부를 달리는 장면이 버젓이 나온다. 영화만으로는 성이 차질 않은지 이 암소는 텔리비전 광고에, 그것도 욕실 용품 광고에 출연한다. 광고를 찍는 옆에는 데이지의 사진으로 꾸몄을 달력이 걸려 있다. 신디 크로퍼드도 클라우디아 쉬퍼도 아니면서 “캘린더카우”가 되다니. 역시 화장발이 좋긴 한지 광고를 찍는 데이지를 보고서 왕년의 촌 암소를 상상하기란 불가능하다. 거칫거칫 일어났던 털은 반들반들 윤이 나고 게슴츠레 내려 뜬 눈은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기보다는 지키는 편이 힘드는 법. 데이지가 시달리는 것은 향수만은 아닐 터이다. 꿈은 꿈일 때가 아름답다. 암소가 시골 들판에서 간절히 꿈꾸던 도회의 이상과 실제로 뛰어들어 맛본 도회의 현실은 천지차이. 도회의 현실은 암소에게는 너무도 얼토당토않게도 신선한 풀 대신에 캐비어를 먹이는 것이다. 외양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씁쓰레한 은막의 현실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