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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날 미역국에서 장례식 육개장까지

수다쟁이 미식가를 위한 한국음식 안내서

  • 판매가 17,000원
  • 책정보 무선 328쪽 140*200mm 2020년 12월 23일
  • ISBN_13 979-11-6579-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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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식탁이 풍성해지는 흥미진진한 잡학
정사와 민담을 맛있게 버무린 음식 이야기
 
생일날에 미역국을, 장례식에서 육개장을 먹는 이유는 뭘까?
한국 사람들은 왜 식당 종업원을 ‘이모’라고 부르는 걸까?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가 밴댕이젓 한 독을 어명으로 분배했다는 건 사실일까?
충무김밥 밑에 종이를 까는 이유는 뭘까?
우리가 먹는 우럭은 사실 볼락이다?
 
고향이 다른 친구들끼리 모여 순대를 먹을 때면 꼭 나오는 말이 있다. ‘순대는 소금을 찍어 먹는 것이 진리다, 아니다 초장이다, 아니다 막장에 찍어 먹어야 한다.’ 그렇게 갑론을박을 벌이며 순대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내다 보면 똑같은 순대라도 훨씬 더 맛있게 느껴진다. 음식이란 게 그렇다. 이야기가 덧붙여질수록 맛이 살아난다. 말이 맛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미식가들은 식탁에서 ‘수다쟁이’가 된다. 눈앞의 음식에 대한 맛있는 이야기들을 우수수 쏟아내며 맛을 풍성하게 만든다. 이 책은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이 《조선왕조실록》이나 《자산어보》와 같은 정사에서부터 민간에 떠도는 야사, 전국을 돌아다니며 만난 지역민들의 인터뷰 등을 버무려 차려낸 음식 이야기 한 상이다. 당신을 수다쟁이 미식가로 안내할, 음식들의 숨은 유래와 발자취, 친숙한 먹거리에 대한 낯설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지금 만나보자.

저자소개

지은이: 황교익


1962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1980년까지 살았다. 도미, 전어, 도다리, 꼬시락, 붕장어, 뽈락, 문어, 멍게, 꽃게, 해삼, 홍합 등 해산물을 주로 먹었다. 초등학교 때 단팥빵, 쥐포, 아이스케키, 자장면을 먹었고, 중학교 때 돈가스와 비프가스를 처음 맛보았다. 혼식을 하지 않는다고 도시락을 들고 벌을 섰다. 고등학교 때 시장 골목에서 통닭, 곱창볶음, 아귀찜에 소주를 마셨다. 1980년 서울에 왔다. 그해 피자와 비엔나커피를 맛봤다. 명동에서 햄버거와 닭칼국수를 먹었다. 대학은 흑석동에 있었다. 그곳에서 돼지갈비, 삼겹살, 순대국, 냉면을 먹었다. 삼겹살과 순대국의 돼지 비린내에 적응하는 데 3년이 걸렸다. 1987년부터 서울 사대문 안에서 밥을 먹었다. 점심으로 된장찌개, 김치찌개, 설렁탕 등을 먹는 데 익숙해졌다. 1990년대 초부터 회사 돈으로 지방을 돌아다니며 온갖 향토음식을 먹었고, 1990년대 중반부터 맛 칼럼을 쓰면서 유명 식당을 설렵하였다. 그렇게 맛본 음식 이야기로 《맛따라 갈까보다》(2000), 《소문난 옛날 맛집》(2008), 《미각의 제국》(2010) 같은 책을 냈다. 2002년부터 사단법인 향토지적재산본부에서 지역 특산물의 지리적 표시 등록과 브랜드 개발 컨설팅을 하였다. 현재 네이버캐스트에 한국의 특산 먹을거리들을 연재하며, 울진대게, 지례흑돼지, 장흥김, 영광굴비, 삼천포쥐포, 청도미나리, 고흥갯장어 등등을 현지에서 맛보고 있다. 앞으로도 먹을 것이고 쓸 것이다.


리뷰

우리 땅, 우리 바다 먹거리에 담긴 한민족의 삶
우리는 자연물을 먹는다. 공장에서 만든 가공식품도 재료는 자연물이다. 때문에 한 지역의 음식은 그 지역의 자연에 종속되어 있다. 근대화가 되고, 산업화를 거치면서 외국의 자연물이 대량으로 유입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밥상의 중심은 한반도에서 자라난 자연물들이다. 저자는 ‘바닷것’과 ‘뭍것’을 아우르며 오랫동안 한국인이 먹어왔으며 앞으로도 먹어갈 우리 먹거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특히 ‘밴댕이’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밴댕이는 ‘밴댕이소갈딱지’라는 말이 있을 만큼 우리와 친숙한 물고기다. 저자는 김훈이 소설 《남한산성》에서 인조가 어명으로 밴댕이젓 한 독을 분배하는 모습을 그렸는데 이것이 《승정원일기》에 적힌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밝힌다. 나아가 우리가 일상에서 밴댕이라고 부르는 생선이 사실 어류분류학상으로 ‘청어목 멸치과 반지’이며, 밴댕이가 정식 명칭인 생선은 ‘청어목 청어과 밴댕이’로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소개한다. 이 외에도 도토리를 먹는 민족은 세계적으로 희귀한데 도토리묵이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된 이야기, 찐빵이 만두에 가까운 모습임에도 ‘빵’으로 불리게 된 연유에 대한 추론 등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먹는 흙’에 대한 이야기도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세종실록》과 일제강점기 발행된 신문에 남아 있는 기록을 토대로 먹는 흙에 대해 수소문한다. 결국 전북 계북면 주민들에게서 먹는 흙의 존재에 대해 듣게 된 이야기에는 먹거리를 통해 한민족의 삶과 애환을 살펴보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이 담겨 있다.
 
농민에서 산업 노동자로, 집밥에서 식당밥으로
왜 한국인들은 식당 종업원을 ‘이모’라고 부르는 걸까? 윤봉길 의사의 《농민독본》은 ‘조선은 농민의 나라’라는 말로 시작한다. 한반도는 누가 뭐래도 농민의 나라였다. 그런데 1960년대 산업화가 일어나며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다. 도시로 떠난 농민은 한순간에 노동자가 되었다. 농민은 자신이 가꾼 농산물을 먹거나 재료를 사서 가정에서 조리해 먹는다. 논밭에서 일을 하다 밥 때가 되면 참을 먹거나 집으로 가서 끼니를 때웠고, 여차하면 이웃집에서 얻어먹었다. 피붙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도시는 다르다. 노동을 팔아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뭔가를 사 먹어야 한다. 어제까지 농민이었는데 식당에서 밥을 ‘사 먹자니’ 어색하다. 식당 주인이나 종업원들도 어제까지 농민이었기에 돈을 받고 밥을 파는 게 어색하다. 저자는 ‘이모’라는 호칭이 탄생한 이유가 여기 있다고 추론한다. 농촌에 살던 때처럼 한 집안의 사람인 듯 음식을 내어주고 먹는 느낌을 이모라는 호칭에서 얻으려 한 것이다.
산업화는 우리의 식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저자는 산업화로 인한 도시화와 관련한 다양한 음식 이야기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순대국, 해장국, 감자탕 등등 온갖 국물 음식들이 담기는 ‘뚝배기’는 든든한 한 끼를 상징하는 말이다. 실제 가정에서는 거의 쓰지 않게 된 뚝배기가 식당에서 사랑받는 식기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기차를 타면 반드시 먹었던 삶은 달걀이, 오늘날에도 찜질방의 필수 간식으로서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숙성회가 훨씬 맛이 뛰어남에도 활어회가 생선회 시장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까닭에 대한 고찰에선 음식 문화와 산업화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날카로운 눈썰미도 엿볼 수 있다.
 
시대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소비된 ‘향토 음식’ 이야기
음식 이야기에 향토 음식이 빠질 수 없다. 한국 사람들은 어딘가로 여행을 가면 그 지역 향토 음식을 꼭 챙겨 먹는다. 강릉에 가면 ‘초당두부’를 먹고, 농업과 운송기술이 발달한 요즘, 전국 어디서나 맛볼 수 있음에도 수원에 가면 ‘갈비’를 떠올린다. 그런데 저자는 100년 전 한반도 사람들에게 지금의 향토 음식들을 보여주면 다들 어리둥절할 것이라며, 우리가 즐기고 있는 향토 음식들 대부분이 산업화 이후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메뉴라고 전한다.
진주냉면은 평양냉면, 진주냉면과 함께 3대 냉면으로 손꼽힌다. 진주냉면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이다. 북한에서 1994년 펴낸 《조선의 민속전통》에 ‘진주냉면이 평양냉면만큼 유명하였다’라고 적혀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냉면을 북녘 음식으로 여겼는데 남쪽 중의 남쪽에 위치한 진주의 냉면이 예부터 유명했다하니 관심을 끈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요리법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향토 음식이 관광산업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요리 전문가들과 진주시 공무원들은 사라진 진주냉면을 ‘개발’하기로 했다. 소고기국물을 기본으로 하는 평양냉면과 차별화되도록 해물로 육수를 우리고 메밀국수를 말았다. 그리고 진주 근처의 도시에서 냉면 위에 육전을 올리는 것에 착안해 육전도 올렸다. 이렇게 개발한 메뉴를 진주에 있는 식당에 전파했고, 여러 매체에 진주냉면이 소개되면서 진주냉면은 한국의 대표 냉면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그렇다면 과연 이 해물육수는 진주냉면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을까? 저자는 진주냉면의 진짜 원형은 어떤 형태였을지 흥미롭게 추론해 나간다.
아바이순대에 관한 이야기도 재밌다. 저자가 1999년 아바이마을에 찾아가 속초시 공무원과 마을 주민들을 인터뷰했을 당시만 해도 음식점에서 오징어순대를 팔진 않았다고 한다. 그 동네의 가정에서 먹던 음식도 아니었고, 아바이마을에 거주하는 함경도 할머니들의 증언에 따르면 함경도에서 먹던 음식도 아니었다. 저자는 오래전부터 이미 존재했던 오징어 몸통에 갖은 재료를 넣고 찌는 형태의 음식이 ‘아바이순대’라는 이름을 얻고 향토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 과정을 재밌게 소개한다.

목차

제1부 오래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먹을 음식들
 
제1장. 그 흔하였던 바다것들
 
- 미역국에 탄생의 고통을 담아내다
미역이나 사람이나
- 문에 걸린 북어는 왜 두 마리인가
명태의 별칭이 이리 많은 이유 | 일본인은 알, 조선인은 살
- 등이 굽어 굴비
그 많았던 조기 | 조기가 사라지자 굴비가 떴다
- 눈을 꿰어서 말리지 않는 과메기
낯선 이름, 청어신흠 | 청어가 사라지자 꽁치가 보였다
- 조선시대에는 자연 숙성 생선회를 먹었다
경북 내륙 지방의 민어회 | 대구도 말려서 회로 쳤다 | 홍어도 자연 숙성 생선회이다 |푹삭힌홍어가남도음식의상징으로 자리 잡기까지 | 물론 싱싱한 생선회도 먹었다 | 비슷하나다른 한국과 일본의 입맛
- 참으로 다양하여 헷갈리는 바닷것들
소설 《남한산성》의 밴댕이는 어류분류학상 반지이다 | 밴댕이소갈딱지 덕에 밴댕이회가 맛있다 | 사라진 뱅어 자리를 대신하는 실치 | 우럭은 말려야 맛이 난다 | 도다리가 맛없을 때 도다리쑥국을 먹는다 | 도루묵은 왜 도루묵이 되었나 | 성게 생식소 명칭에 대한 고찰 | 어리어리하여 어리굴젓인 것은 아니다
 
제2장 귀하였던 뭍것들
 
- 왜 개고기를 먹지 않나요
- 먹을 것 없던 날의 보리
아껴아껴 먹었던 보리개떡 | 보리밥을 맛있게 먹는 법이 따로 있다
- 남미에서 온 옥수수의 변신
올챙이도 아니고 국수도 아니고
- 우리는 도토리도 먹는다
- 나무의 순도 먹는다
울타리 가시나무의 순 | 시집가면 참죽나무부터 심는다
- 흙도 먹었다
흙떡에 대한 ‘아픈 추억’
- 저절로 자라고 늙는 호박
- 겨우살이의 김장
다양하기로는 장아찌 | 배추김치만 남은 김장 | 김장하는 날의 추억 | “김치가 기무치를 이겼습니다” | 기무치와 단무지 | 김치애국팔이는 태극기부대이다 | 김치는 김치이다
- 곡물의 술을 마셨다
농민은 막걸리 | 양반은 소주 | 소주 아니고 쏘주
- 냉국보다 찬국
- 호랑이보다 무서운 곶감
- 만두 삼국지
회회인은 상화보다 연애에 관심이 있었다 | 메밀만두에서 밀만두로 |오랑캐의 머리를 먹는 일 | 팥소만두 아니고 찐빵
- 장례식에서 육개장을 먹는 것의 의미 없음에 대하여
 
제2부 밥을 사 먹는 시대가 열리다
 
제1장. 도시의 음식들
 
- 식당에 ‘이모’가 사는 까닭
- 뚝배기는 노동자의 그릇이다
- 무서운 이름 ‘집밥’
- 소 돼지 닭의 시대
일소에서 고기소로 | ‘국대’ 고기구이 불고기 | ‘불고기’는 평양, 넓게는 평안도 사투리일까 | 토종 돼지는 퇴출되었다 | 순대국밥이나 돼지국밥이나 | 돈까스 앞에서의 명상 | 1인 1닭의 시대 | 부족한 것끼리 모여 삼계탕이 되다
- 활어회 신화의 탄생
활어회의 문제들 | 방송 탓이 크다 | 불신사회의 생선회
- 가을 전어는 도심에서 헤엄을 친다
전어 맛이 절정일 때가 있다 | 전어는 이렇게 먹어야 한다
- 일본에서 온 빙수에 대한 한국적 재해석
- 한국음식 자장면
화교가 가지고 온 국수 | 화교의 몰락과 자장면의 번창
- 《우동 한 그릇》에 담긴 눈물의 정체
- 삶은 달걀의 공간 이동
찜질방에 가면 삶은 달걀을 먹어야 한다
- 국민의 삶과는 아무 관련 없는 국가대표 음식
- 커피 공화국 탄생기
누룽지 냄새가 난다 | 강릉에 가면 커피가 맛있는 이유
 
제2장. ‘향토’에 원래 있었던 음식은 없다
 
- 가난이 만든 강릉 초당두부
사대부가 두부를 쑤겠는가 | 콩이 바닷물과 만나다
- 함경도 아바이는 모르는 속초 오징어순대
오징어찜 혹은 이카메시 | 요즘의 조리법과 비슷하면서 조금 다르다 | 강원도만의 오징어순대를 위하여
- 한국 향토음식의 대표선수 전주비빔밥
비빔밥의 계통도
- 그리운 충무김밥 할매들
할매들은 창의적이었다 | 종이의 추억
- 북한에서 유명한 진주냉면과 그 재탄생기
이름은 있고 레시피는 없다 | 진주냉면 육수도 소고기 국물이었을 것이다
- 훅 나타났다 훅 사라져간 안동찜닭
치킨에 밀린 닭집 골목의 생존 아이템 | 33조각의 닭고기
- 부자 동네의 흔적 수원갈비와 안의갈비찜
소갈비가 가장 먹을 만했던 이유 | 수원은 잘살았다 | 안의도 잘사는 동네였기는 했다
 
나가는 말 | 앵두나무 우물가에는 아무도 없다
참고 문헌
 

책속으로

미역은 일년생이다. 봄에 미역 줄기 아래에 미역귀라는 주름진 덩이가 생기는데, 여기에서 유주자(遊走子)가 방출되고 여름에 들면서 미역은 녹아버린다. 유주자는 무성 세포로 정자와 난자가 되기 전의 상태다. 유주자는 방출 후 배우체가 되어 여름을 나고 가을이면 암수로 나뉘어져 수정을 하는데, 이 수정란이 바위에 붙어 미역으로 자란다. 자연산 미역의 수정란이 바위에 붙을 즈음인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미역바위 씻기를 한다. 미역이 붙을 바위를 청소하는 것이다. 바닷가에서는 이 미역바위 씻기가 큰일이었다.
- 미역이나 사람이나(14p)
 
굴비의 옛 표기는 ‘구비’이다. 한자로 ‘仇非’라고 썼다. 구비는 산굽이, 강굽이처럼 구부러져 있는 모양새를 일컫는 ‘굽이’이다. 조기를 짚으로 엮어 매달면 등이 구부러지게 되는데 그 모양새를 따서 ‘구비조기’라고 불렀고, 이게 굴비로 변한 것이다. 따라서 짚으로 생선의 몸통을 엮어 말리면 다 굴비라고 할 수 있다. 부세며 수조기도 굴비가 되고, 민어도 굴비가 될 수 있다. 굴비조기가 가장 흔하고 맛있어 굴비 하면 조기만을 이르게 된 것이다.
- 등이 굽어 굴비(25p)
 
먹을거리가 부족하니 산성을 뒤졌던 모양이다. 그렇게 하여 찾아낸 것이 밴댕이젓 한 독. 그걸 그냥 나누면 될 것을 굳이 왕에게 묻고 있다. 왕은 얼마나 비참하였을까. 설마 왕에게 저런 걸 물었을까 싶지만, 소설이니 허구이겠지 싶지만, 역사적 사실이다. 《승정원일기》에 소설 속의 내용이 그대로 실려 있다. 인조 15년 1월 21일의 기록이다.
- 소설 《남한산성》의 밴댕이는 어류분류학상 반지이다(54p)
 
한국인이 가장 자주 먹는 생선회는 광어일 것이고 다음으로 우럭이 순위권에 들 것이다. 광어 옆에는 늘 우럭이 따른다. 그래서 우럭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꼭 그렇지도 않다. 일단 우리가 먹는 우럭은 우럭이 아니다. 가짜 생선회? 아니다. 이름이 잘못되었다. 우리가 보통 우럭이라고 부르는 생선은 사실 조피볼락이 바른 이름이다. 그런데 우럭볼락이라는 물고기가 또 있다. 몸집이 작고 갈색을 띄는 생선인데, 흔히 볼락이라 하지만 바른 이름은 우럭볼락이다.
- 우럭은 말려야 맛이 난다(66p)
 
다들 잘 알다시피 임진왜란 때 선조가 먹었던 생선에 대한 에피소드가 도루묵의 어원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허구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선조가 임진왜란 중 피난길에 ‘묵’이라는 생선을 먹고 맛있어 ‘은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난이 끝난 후 궁궐에 돌아갔는데 문득 피난 시절의 그 ‘은어’를 맛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 ‘은어’를 올려라 하였는데, 선조 입에 예전 그 맛이 아니었다. 그래서 속이 상한 선조가 원래 이름으로 다시 부르라고, “도로 묵이라 부르라” 했다고, 그래서 ‘도루-묵’이 되었다는 것이다. 허나 이 이야기가 사실일 리가 없다. 일단 선조는 동해 쪽으로 피난을 간 적이 없으니 동해의 생선인 도루묵을 먹었을 리가 없다.
- 도루묵은 왜 도루묵이 되었나(76p)
 
그러면 ‘어리’라는 말은 어디에서 온 말일까. ‘덜된’, ‘모자란’의 뜻을 지닌 ‘얼’에서 온 말이다. 짜지 않게 간을 하는 것을 얼간이라고 하며, 얼간으로 담근 젓을 어리젓이라 한다. 따라서 어리굴젓은 짜지 않게 담근 굴젓이란 뜻이다. 어리굴젓의 어원을 자세히 따져보는 건, 어리굴젓 맛의 비결이 바로 얼간에 있기 때문이다. 젓갈을 담글 때 소금은 대체로 젓갈 재료와 같은 양이나 적어도 20% 이상 넣는다. 소금이 너무 적으면 상하고 많으면 짜기 때문에 적당한 소금 배합이 젓갈맛의 생명이다. 어리굴젓은 일반적인 젓갈보다 훨씬 소금을 적게 넣는다.
- 어리어리하여 어리굴젓인 것은 아니다(82p)
 
《세종실록》에 등장하는 세종 26년 1444년 4월 24일자의 기록이다. 해주 사람들이 배가 고파 흙을 파서 먹었다고 전한다. 흙을 파다가 두 사람이 흙에 깔려 죽었는데, 관리가 임금에게는 “대단한 기근이 아니”라고 토를 단다. 대한민국에서 이랬으면 보고한 공무원은 파면되고, 자칫하면 대통령까지 탄핵될 수 있을 터이다. 이익의 《성호사설》에도 흙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 흙도 먹었다(117p)
 
노동자는 자신의 먹을거리를 직접 확보할 수가 없다. 노동을 팔아 먹을거리를 사서 먹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노동자를 상대로 하는 식당이 생겼다. 어제까지 농민으로 살면서 집에서 먹던 밥을 식당에서 돈을 주고 사 먹으려니 어색하다. 식당의 주인이며 종업원들도 돈을 받고 밥을 파는 것이 어색하다. 그들도 어제까지 농민이었기 때문이다. 서로 음식을 사고파는 일에 대한 어색함을 줄이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였다. 이모라는 호칭은 그렇게 탄생하였다.
- 식당에 ‘이모’가 사는 까닭(182p)
 
충무김밥은 원래 배 위에서 먹던 음식이다. ‘다라’에 김밥과 반찬까지는 담아도 그릇까지 챙기기는 어려웠다. 승객의 손에다 음식을 올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종이로 그릇을 대신하였다. 옛날에는 누런 비료포대 종이를 썼다. 질기고 두꺼워 반찬과 김치의 국물이 바닥까지 스미지 않는다. 승객들은 이 종이에 불만이 없었다. 그때는 위생 관념이 그랬다. 김밥 할매들이 가게를 차리면서 이렇게 종이를 깔아주던 버릇 혹은 전통을 버리지 않았다. 그릇에 담아낼 수 있음에도 그릇 위에 종이를 깔았다. 비료포대 종이는 민망하니 흰 종이로 대체하였다.
- 종이의 추억(2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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