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부터 함메르페스트까지는 천 킬로미터.
레나는 처음으로 아빠와 단둘이 여행길에 나선다.
이 여행길에서 아빠와 딸은 깨닫는다.
딸이 생각만큼 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아빠에게도 의외로 약한 모습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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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엉킨 실타래를 풀어 낼 용기가 없다면,
일생에 한 번은 함메르페스트로!

함메르페스트는 노르웨이 북서쪽, 세상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곳이며
그 너머로는 바다밖에 없는 곳이다. 아빠와 딸은 대체 이런 곳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얻겠다고 털털털 자동차 여행을 떠나는 것일까.

｜아빠라는 사람의 진실｜
몇 주만 지나면 열다섯 살이 되는 레나는 아빠와 단둘이 함메르페스트라는 곳으로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 아빠 말에 의하면, 함메르페스트는 여름이면 집집마다 붉은 장미가 피는 곳, 바다 내음만이 가득한 곳, 하늘이 철새들로 수놓이는 낙원 같은 곳이다. 그런데 사실, 아빠도 함메르페스트에는 가 본 적이 없다. 어릴 때 찢어지게 가난했던 아빠네 식구들이, 힘들 때마다 언젠가는 함메르페스트에 갈 것을 꿈꾸며 희망을 가졌던 지상 낙원 같은 곳이다. 아빠가 레나에게 갑자기 함메르페스트 여행을 제안한 것은, 어떤 비밀을 털어놓고 싶어서다. 집이라는 일상 공간을 떠나, 아빠와 딸이라는 관계를 떠나, 진심을 털어놓고 털어놓은 진심을 이해하는 장소로서 함메르페스트로의 여행길을 택한다. 얼마나 무거운 비밀이기에, 함메르페스트까지 떠나야 했을까?
이미 《아빠는 아프리카로 간 게 아니었다》로 아빠와 아들의 관계를 그린 마르야레나 렘브케는, 이번엔 아빠와 딸 사이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이 사춘기 소년에서 소녀로 바뀌었지만, ‘아빠’라는 존재의 실체를 파헤친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늘 듬직하고, 멋지고, 올바른, 세상의 중심으로서의 ‘아빠’가 아닌, 초라하고, 슬프고, 어깨 처진 현실의 아빠로서 말이다.
마르야레나 렘브케는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어 아빠를 작게 느끼게 되는 그 순간을 주목한다. 아빠가 생각했던 것만큼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 아이들은 아빠를 어떻게 대한다는 것일까. 마르야레나 렘브케는 아빠가 레나에게 제안한 함메르페스트로의 여행에서 해답을 찾는다.

｜사춘기라는 나이의 진실｜
아빠가 레나에게 이번 여행길에서 털어놓고 싶은 것은, 전에 한 번 결혼한 적이 있고, 그때의 아내와 아들을 버린 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젊은 날, 짧은 생각으로, 벗어나고 싶었던 현실에서 무작정 도망을 쳐 버린 아빠는 두고두고 후회하고 죄스러워 한다. 그래서 이번에 함메르페스트로 가는 길에 고향에 들러, 예전 아내와 이젠 레나보다도 더 나이 먹었을 아들을 만날 용기를 가져 본다. 레나는 이런 아빠의 부끄러운 비밀을 알게 돼서 얕보게 됐을까? 아니다. 레나는 좀 놀랐을 뿐, 아빠에게 실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빠에게 빨리 그 아들을 만나러 가라며 등을 떠밀며 힘을 실어 준다. 이렇게 마르야레나 렘브케는, 레나(사춘기 아이들)가 아빠(어른)의 작은 모습을 깨닫게 되는 지점과 동시에 오히려 아빠가 생각했던 것만큼 레나가 어리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지점도 함께 보여 준다. 아빠가 레나에게 신뢰받을 수 없을 법한 부끄러운 모습을 솔직히 보여 주는 순간, 레나는 아빠에게 가장 큰 신뢰를 던지며 격려하기 때문이다. 사춘기라는 나이는 어린이도 어른도 아닌 애매한 나이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서 충분히 기댈 만큼 단단한 나이라는 것을 레나를 통해 덤덤히 보여 준다. 아이들 앞에서 어깨의 힘을 빼도 좋다고 어른들에게 슬쩍 알려 주는, 작가의 센스 있는 선물이다.

｜함메르페스트의 진실｜
사실 아빠와 레나는 함메르페스트에 도착하지 못했다. 게다가 함메르페스트에 가 봤던 사람은 별 볼 것 없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어쩌면 아빠는 함메르페스트가 에덴 동산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곳은 아빠에겐 여전히 이상향 같은 곳이다. 가난에 찌들었던 어릴 시절에는, 가 보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상상할 수 있는 꿈의 장소였고, 아빠가 되어서는 마음의 응어리를 풀 용기를 주는 곳, 용서를 빌고 화해를 권하는 장소로서의 의미를 더하기 때문이다. 딸 레나에게 부끄러운 고백을 하기 위해 함메르페스트까지의 여행을 권하는 것이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들에게 뒤늦게 용서를 구하며 함께 함메르페스트까지 가기로 약속하는 그에게는, 이미 함메르페스트는 도착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유토피아다.
꿈을 가질 것, 용기를 낼 것, 진심을 전하고 사랑을 고백할 것. 이것이 함메르페스트에 담긴 상징이자 진실이다.

｜일상적인 여러 이야기 조각들｜
마르야레나 렘브케의 여러 작품들이 그렇듯, 《함메르페스트로 가는 길》에도 자동차 여행을 큰 이야기 줄기로 삼은 외에도, 사춘기 독자들에게 밀접한 일상 생활 속 여러 에피소드들을 그리고 있다. 여자 친구들끼리의 우정, 파티에 입고 갈 옷을 사고 싶은 욕심, 그 욕심을 위해 하는 아르바이트, 연애에 대한 관심, 레나가 실수를 저지르고는 자존심을 챙기는 부분 등 흔히 있는 일이고 지나치기 쉬우면서도 흘려버리기엔 아까운 부분들을 놓치지 않고 섬세한 심리묘사와 단정한 문체로 전하고 있다. 일상적인 삶을 편안하고 의미 있게 담았다.

《함메르페스트로 가는 길》은 마르야레나 렘브케가 ‘레나’와 그 가족들을 주인공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여섯 권에 담은 책 가운데 한 권이다. 등장인물은 같지만, 여섯 권 모두 각권 독립적인 작품들이다. 시공 청소년 문고는 이 가운데 《비밀의 시간》(시공 청소년 문고 9｜1996년 오스트리아 청소년 문학상 명예 도서 선정),《돌이 아직 새였을 때》(시공 청소년 문고10｜1999년 오스트리아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함메르페스트로 가는 길》(시공 청소년 문고11｜2000년 오스트리아 청소년 문학상 명예 도서 선정)의 세 권을 소개한다. 무겁고 진지한 주제도 깃털처럼 가벼운 언어로 풀어내기로 정평이 난 렘프케의 작품들은 잔잔한 여운 속에 깊은 감동을 주며 우리 삶의 소중한 단면들을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