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_어쩌면 그 비밀은 캐지 않는 것이 좋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안나는 과거를 되찾고 싶었다. 제아무리 추하다 할지라도
과거의 안나가 얼굴을 드러내게 하고 싶었다.

안나의 엄마_
“그 과거가 네가 바라는 것과 아주 다를 수도 있잖니?
어떨 때는 그냥 모르고 넘어가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어.”

안나의 아빠_
“여보, 이러지 마! 쟨 우리 딸이 아니야!
우리 인생을 망쳐 놓으려고 했던 괴물이라고!”

이베스_
“돈 어디 있냐고, 어디? 어서 불어! 내 돈, 어-디-다 숨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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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시기의 고전적 질문,
“나는 누구인가?”의 답을 찾아 헤매는
가장 못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젊고 용감한 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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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는 사고로 인해 과거의 기억을 몽땅 잊어버린 스무 살 여자다. 하지만 스무 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앳된 얼굴, 안나의 과거에 대해 물을 때마다 대답을 회피하는 부모님, 남자 친구라며 나타나 뜬금없이 ‘그 돈’ 어디 있느냐며 윽박지르는 이베스, 풍족하고 넉넉한 현실과는 달리 차가운 물에 손만 닿으면 떠오르는 구질구질하고 끔찍한 과거의 기억 조각들. 안나는 자신이 정말 ‘안나’인지조차 의심하며 스스로 자아를 찾아 나선다.
작가는 ‘기억 상실’이라는 소재를 통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청소년 시기의 고전적 질문에 자신의 존재 탐구에 대한 절실함과 쓰라린 현실을 접목시키고 여기에 추리 형식을 가미하여 긴장감과 재미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품게 되는 질문, 혹은 품도록 권하는 질문 ‘나는 누구인가’를 철학적 접근에만 그치지 않고, 좀더 본능적이고 현실적인 측면에서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작가의 노련한 필력이 담겨 있다.
독일 아동・청소년 문학상 추리 문학 부분에 주어지는 에밀 상을 받은 적 있고, 청소년을 위한 추리 문학 작가로서 자리를 확고히 굳힌 작가답게, 자아를 찾아 용감히 돌진하는 십대의 거침없는 심리를 섬세히 그려 내고, 단순하면서 특징적인 인물들, 인물들 사이에 서로 얽히고설키며 벌어지는 삶의 비애들, 여기에 고조되는 긴장감, 흥미, 재미를 세련되게 담았다.

◆ 누구보다도 절실한 질문, ‘나는 누구인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은 안나의 욕망은 단지 알면 좋고 몰라도 사는 데 큰 문제없는 철학적 접근과는 궤가 다르다. 과거에 대한 기억마저 모두 잃은 안나는, 가장 의지하고픈 부모님조차 수상하게 여기게 된다. 과거에 대해 물으면 현재로 만족하면 되지 않느냐는 엄마, 과거를 물어 엄마를 괴롭히지 말아 달라는 아빠를 안나는 더욱 수상쩍게 여긴다. 무엇보다도 안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차가운 물에 손 댈 때마다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들이다. 현재와는 다른 비참하고 끔찍한 기억들. 그 기억들만 모른 채하면 현재의 풍요롭고 부유한 생활을 계속 누릴 수 있을 테지만, 안나는 그럴수록 자신의 과거를 찾아 헤맨다. 과거의 자신이 현재만큼 당당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수록, 안나는 그 진실을 위해 더욱 용감히 돌진한다. 아무리 구차한 인생이라 할지라도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자신의 인생이기 때문에.

◆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까지 집요한 추적,
마침내 열린 상자 안의 마지막 진실
숨 가쁜 추적 끝에 마주하게 된 자신의 과거. 안나는 부모님의 말씀처럼 열지 말아야 할 상자를 열었던 것은 아닐까? 현재 부잣집 공주님처럼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하는 스무 살 ‘안나’의 삶과, 고아로서 이 집 저 집 위탁 가정을 돌아다니며 (진짜 엄마에게 자신을 돌려보내도록 하겠다는 일념 하에) 쫓겨날 짓만 골라서 하는 열일곱 살 ‘킴’의 삶은 극과 극이다. 이 양극을 오가면서, 자신의 과거가 얼마나 초라할지 짐작하게 되면서, 아무리 추하다 할지라도 진짜 자신과 맞닥뜨리고 말겠다는 안나, 아니 킴의 다부진 결심만큼은 흔들리지 않는다. 요아힘 프리드리히는 이렇게, 어리고 가냘플지 모르지만 그만큼 순수하고 견고한 용기가 어떻게 진실을 마주하도록 열심히 이끄는지를 보여 준다. 판도라가 금지된 상자를 열어 세상을 고통에 휩싸이게 했어도 그 끝에 ‘희망’을 선사 받았듯이, 킴은 가장 못난 자신을 마주하는 고통을 얻은 끝에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진실’을 선사 받는다. 진실이란 그 내용이 위대하건 초라하건 간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 얼마나 귀중한지 보여 주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진실에 다가서려 애쓴 그 가냘픈 용기도.

◆ 린덴탈 부인은 자신을 이용해 납치 극을 벌인 킴을
왜 자신의 딸로 둔갑시켰나? _벗어날 수 없는 진실의 손바닥
《차가운 물》은 ‘안나’인 줄 알았던 기억 상실의 소녀 ‘킴’이 진짜 자신을 쫓는 데에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킴이 자신의 과거에 다가서면 설수록 풀릴 듯하던 실타래가 다시 헝클어지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다른 한 축에는 의외의 인물 린덴탈 부인이 서 있다. 킴이 알아낸 자신의 존재란, 고아원에서 만난 남자 친구 이베스가 세운 계획대로 자신을 맡아 키우며 온갖 사랑을 쏟아 붓는 린덴탈 부인을 다른 곳으로 유인해 내어 몸값으로 200만 유로를 타 내 뉴질랜드로 도망가려 했던 유괴범이라는 것. 그 사건이 들통 난 순간, 킴은 사고로 기억을 잃은 것이다. 이런 내막을 알고 있을 린덴탈 부인인데, 그런 끔찍한 일을 감행한 소녀 ‘킴’을 과거까지 숨겨 주며 왜 친딸 ‘안나’로 둔갑시켰을까.

나는 린덴탈 부인의 품을 빠져나와 그녀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엄마는 진짜 딸이 돌아오기를 원하는 게 아니군요. 엄마는 안나 앞에 서서 용서를 빌고 그 애가 떠난 시점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렇죠? 엄마는 그저 엄마가 늘 원하던 딸을 하나 갖고 싶은 거예요. 갓 태어난 아기 같은, 그래서 엄마가 처음부터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딸 말이에요. 저는 두 분의 잘못으로 잃어버린 안나에게 보상하기 위한 대용물일 뿐이에요.”
-본문 445쪽에서

킴이 기억을 모두 잃은 것은 두 사람에게 주어진 ‘기회’였다. 한 사람에게는 구질구질했던 삶에서 벗어나 공주와 같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던 기회, 다른 한 사람에게는 과거 자신의 딸에게 잘못했던 것을 뉘우치며 딸과 똑같이 생긴 소녀에게 사랑을 쏟으며 새로 좋은 엄마로 시작할 수 있었던 기회. 그러나 진실은 말한다. 삶은 늘 연장선상에 있다고. 과오를 그냥 덮어 두고 새로 시작하는 것은 모래 위에 집짓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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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물》은 독일 최고의 아동문학 작가이자 청소년 추리 소설 작가로 자리를 굳힌 요아힘 프리드리히의 작품이다. 자아를 찾아가는 용감한 소녀, 잘못된 사랑으로 잃어버린 딸을 다시 되찾고 싶어 하는 한 엄마의 어긋난 욕망, 검은돈을 둘러싸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 등 추리 소설로서의 긴장감과 탄탄한 줄거리는 448쪽에 이르는 두께도 잊어버리고 순식간에 읽게 한다. 추리 소설의 재미와 청소년에게 자아와 진실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깊이를 고루 갖췄다.